조선 전기 함양군 군수로 재임한 문신이자 영남 사림학파를 대표하는 유학자.
자는 계온(季昷) 호는 점필재(佔畢齋), 선산(善山)인으로 김숙자(金淑滋)의 아들이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에서 출생하여 28세 때 세조조에 등과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성종조에 39세로 함양군수에 재임하였다.
생전에 단종의 폐위를 슬퍼하고 세조의 불의를 풍자했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사관으로서 사초에 적어 넣은 것이 원인이 되어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부관참시를 당하고 문집이 모두 소각되었으며, 김일손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로 이어지는 한국 유학의 정통을 계승하였다. 문하에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유호인(兪好仁), 조위(曺偉), 남효온(南孝溫), 홍유손(洪裕孫) 등의 도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이후 조광조(趙光祖)에게까지 그 학통이 계승되었다.
저서로는 「점필재집(佔畢齋集)」, 「유두류록(遊頭流錄)」, 「청구풍아(靑丘風雅)」, 「당후일기(堂後日記)」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대동문수(大東文粹)」, 「일선지(一善誌)」, 「이준록(彛尊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이 전해지고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구미의 금오서원(金烏書院), 함양의 백연서원(栢淵書院),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 금산의 경렴서원(景濂書院), 고창의 운곡서원(雲谷書院), 개령의 덕림서원(德林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참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