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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시대 -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생진, 문과, 명현, 남원(南原)인. 자는 구이(懼易), 호는 구졸암(九拙菴). 

관(灌)의 손자요 응곤(應鯤)의 둘째 아들로, 중종 35년(1540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명종 원년(1546)에 문과 급제하였다. 선조 14년(1581)에는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향년 66세로 일생을 마쳤다. 임종시에 '국은(國恩)을 갚지 못함이 한이로다.' 하고 사사(私事)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명나라 황제가 제문을 보내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을 만큼 학식과 덕망을 갖춘 학자였다. 

벼슬이 경재(卿宰)가 되어서도 청빈함은 한토(寒土)와 같았고 일찍 조그마한 서재(書齋)를 지어 구졸재(九拙齋)라 현판을 걸고 시(詩)로서 구졸(九拙)의 뜻을 읊었으니 즉 "성품이 졸(拙)하고, 얼굴이 졸하고, 말이 졸하고, 글이 졸하고, 벼슬이 졸하고, 벗과 사귐이 졸하고, 정치에 졸하고, 몸을 위한 꾀가 졸하고, 자손을 위한 꾀가 졸하다."라고 하였다. 

숙종 27년(1701)에 구천서원(龜川書院)에 배향하였다.


참고

「함양군사(咸陽郡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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