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선시대 - 의재義齋 문태서文泰瑞(1880~1913)
충신, 의병장, 남평(南平)인. 익점(益漸)의 후손이다.
고종 경진년(1880)에 안의군 서상면 장구지동에서 태어난 구한말의 의병장으로 본명은 태진(泰鎭)이고 자는 태서(泰瑞)인데 문태수(文泰洙)장군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에 천자문을 익히고 11세에 사서(四書)를 읽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과 밀의하여 덕유산을 근거지로 함양, 안의, 거창, 무주, 장수, 남원, 옥천에서 왜적토벌의 수많은 전투를 벌이며 연전연승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1913년 서울감옥에서 자결한 독립운동가이며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지금 사적비가 안의 광풍루(光風樓) 앞, 장수 토옥동 입구, 무주구천동에 있고 서상 장구지에 10,000평의 대지에 생가를 복원하여 사당과 생가, 사적비, 시비, 흉상 등이 세워져 있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 복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함양군사咸陽郡史」
「함양문화총람(咸陽文化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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