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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함양읍> 대덕리> 뇌계(㵢溪)의 홍패(紅牌)

  성종조(成宗朝)에 영남 선비 한 분이 어느 날 서울 구경을 하던 차에 문득 궁전(宮殿)에 다다르니 문사호객(文士豪客)들이 반궁(泮宮)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선비이니 들어가지 못할 바가 없다고 생각하여 선비들 틈에 끼어 반궁에 들어서니 홍패를 제시하라고 하는데 패가 없어 할 수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무례하게도 돌아오는 길에 궁장(宮墻) 안에서 좌우를 분간 못하고 방황하다가 보니 아름다운 정원에 구미가 당기는 지라 풍류객이 어찌 방화수유(訪花隨柳)의 기분(氣分)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정신없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니 더욱 아름다웠다. 드디어 궁전어귀에 이르렀는데 그 때 왕이 환관 수십 명을 거느리고 지나가는지라 은신할 곳이 없어서 몸을 숨길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어가(御駕)가 지나시는 앞에 엎드렸다.

  임금님이 어가를 멈추시고 가까이 와서 "누구이기에 감히 이 지엄한 궁궐에 들어왔는가?" 하니 "예, 신은 시골 사람으로 반궁에 들어가다가 퇴장을 당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경치에 이끌리어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이르렀나이다. 죽을 죄를 범하였사오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였다. 

  이에 임금님이 "네가 능히 시(詩)를 지을 줄 아느냐?"고 하시니 "예, 잘 지을 수는 없으나 약간은 할 줄 압니다." 라고 하니 "그렇다면 시 한 구를 읊을 테니 너는 이 시를 대연(對聯)으로 직답을 하라." 하시며 "金玉非寶良臣寶(금과 옥이 보배가 아니라 어진 신하가 보배이니라.)" 하신다. 이에 선비가 즉시 그 답연(答聯)으로 "日月非明聖主明(해와 달이 밝은 것이 아니라 성주(聖主)께서 밝사옵니다.)" 하였다.

  임금님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그의 글 짓는 재주에 탄복하시고 "과거시행은 문사(文士)를 발탁하기 위함인데 내 능히 너의 재주를 시험하였으니 마땅히 급제라." 하시며 즉시 홍패와 과거급제 장을 하사하시면서 반궁에 들어가서 동주(同做)하라 하셨다.  

  이에 선비는 홍패를 가지고 반궁에 들어가니 모든 사유(士儒)들이 깜짝 놀라서 그대들이 급제 아닌 자 반궁에 못 들어간다 하였기에 지금 가서 급제를 하고 오는 중이라고 하니 분명 홍패가 자기들의 것과 같아서 대접이 지극하였다.

  이로서 급제에 이르시고 벼슬은 오르지 아니하다가 나라에서 부르심이 간절하여 벼슬에 나갔다가 어버이의 병환으로 사양하였다. 그 뒤 또 나아가 벼슬하다가 어머니의 병환(病患)으로 벼슬을 사양(辭讓)하니 왕은 차마 그 효심(孝心)을 가상(嘉賞)히 여겨 어머니를 가까이 모실 수 있도록 우선 합천군수(陜川郡守)로 있으면서 어머니 병환(病患)을 돌보라고까지 하였다.   

  이와 같이 글은 당대의 사종(師宗)이요 충(忠)은 거세(擧世)의 귀감(龜鑑)이며 효(孝)는 천고(千古)의 강상(網常)이라 세상에서 삼절(三絶)이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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