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함양읍> 이은리> 이은대
지금부터 500여 년 전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와 있을 당시 유자광이 종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간교한 인간이라 세조에게 특채되어 훈구파에 뿌리를 내리고 승승장구하여 성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임직되었다. 고모가 지곡 수여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고모댁에 인사차 함양을 들렀다. 점필재는 유자광이 간사한 인물이기 때문에 기피하는 인물로 함양에 오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유자광이 관찰사이지만 굽신거릴 수가 없었다.
유자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기 꺼려서 관찰사가 이곳에 오거든 군수는 지방 순행차 등구마천으로 출장을 가고 없다고 일러라. 공무로 오는 것도 아니고 사사로이 오는데 꼭 만나야 할 이유도 없고 그 앞에 굽신거릴 수 없어 난처해서 이곳 이은대에 와서 숨어버렸다.
유자광이 함양에 와서 두로 살펴보니 산수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장이라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서정적인 고장이다. 그는 대관림을 돌아보고 소고대의 절경을 바라보면서 다시 내려와 학사루에 올랐다. 그리고 아전에게 필묵을 준비하라 일렀다. 이 아름다운 고장에서 시 한수를 읊지 않을 수 있느냐, 하며 시 한수를 써서 학사루에 걸어놓게 하였다. 유자광이 떠난 후 점필재는 관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학사루에 올라보니 유자광의 시판이 걸려 있었다. 아니 유자광 따위가 감히 학사루에 시판을 걸 자격이 있느냐? 고매하신 선비들의 시판 가운데 서얼 출신의 작품이 걸릴 수 있느냐 하면서 철거하라 명하였다.
그 소문이 꼬리를 물고 전해져서 유자광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출신이 떳떳하지 않아 열등감에 쌓여서 출세한 사람을 보면 모함하여 제거하기를 일삼는 그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점필재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쳤지만 감히 대결할 수 없었는데 점필재가 세상을 떠난 후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한 빌미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은대는 유자광을 피해 김종직이 숨어있던 곳이요 뒤에 함양군민이 점필재의 생사당을 세웠지만 무오사화 때 유자광이 연산군에게 간언하여 김종직이 제자들을 시켜 백성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지었다고 하여 헐어내게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왜인들이 천왕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참배 장소가 되었고 해방 후 헐어내고 6.25이후 충혼탑을 세우고 순국영령들을 추모하는 곳이 되었다.(이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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