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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함양읍> 신관리> 아버지를 살린 박실

  조선 초기 태조 때에 박자안이 경상전라도 안무사로 있을 때였다. 왜구들이 침략했다가 왜장이 항복하고 귀화하였다. 자안은 귀화한 왜장과 대화하는 중에 잘못하여 국가안보에 관한 군사기밀을 누설하였다. 따라서 임금이 대노하여 조정에 명을 내려 그곳 관리에게 글을 써 보내서 자안을 참수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때 그러한 소식을 들은 아들 박실(朴實)은 정안군(태종)에게 찾아가서 아버지가 비록 나라에 죄를 지었지만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고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매달려 간곡히 애원하며 통곡하였다. 정안군이 볼 때 어린 나이에 자신의 위험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애원하므로 효성이 지극하고 과감한 소년이라 생각되어 한편으로 가련하게 여겼다.

  그래서 아버지인 태조에게 참수할 것을 거두어주시기를 간하여 간신히 허락을 받아냈다. 사태가 급한지라 역마를 내어 심구수(沈龜壽)를 사형장으로 보내어 빨리 달려가라고 하였다. 늦어서 목을 친 다음에 가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심구수가 말을 몰아 빨리 달려가다가 가는 도중에서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설상가상으로 어려움은 계속되고 위험은 코앞에 다가왔다. 빨리 갈 수는 없고 시각을 다투는 찰나이기에 역리에게 어명을 가져가던 글을 주어서 역리로 하여금 대신해서 빨리 가도록 독촉하였다. 역리는 말을 타고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말을 달렸다 

  역리가 미처 사형장에 이르기 전에 관리가 자안을 사형장에 끌어다 묶어놓고 자안의 얼굴에 옻칠을 풍기고 옷을 갈아입혀서 칼을 갖추어 의자에 앉혀놓고 춤을 추면서 형을 집행하려는 순간이었다. 사태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칼만 휘두르면 목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역리가 미처 당도하지 못하여 들판에서 삿갓을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거늘 이를 바라본 형 집행관이 참(斬)하지 않고 기다렸으므로 자안은 죽음을 면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촉각을 다투어 서두른 탓으로 자안은 목이 달아날 뻔 하였던 찰나에서 살아났던 것이다.   

  박실은 본래 학술과 무예가 없었으나 태종이 그 아버지를 효로써 살려내었음을 기특하게 여겨 금여(禁旅)를 맡겨 등용하였던 것이다. 실은 1402년에 전농시정이 되고 태종 10년에 병마사가 되었으며 1414년에 예조참의를 거쳐서 삼년 뒤에 공조판서 그리고 그 다음해에 좌군동지총제에 올랐다. 세종 때 중군총제가 되고 전라도 수군처치사 도총제 등을 지냈다. 실이라고 하는 이름도 태종이 사명(賜名)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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