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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휴천면> 문정리> 문정리 전설

  문정마을은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있고 옥을 굴리는 맑은 물소리가 끊임없이 흐르고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 곳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교통이 불편하여 외부의 생활과 단절되고 생계를 이어갈 논밭이 부족하였다. 경치만 보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여름에는 약초를 캐고 버섯이나 나물을 채취하며 사냥을 하고 겨울이면 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구워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탄촌(炭村)' 즉 '숯구지'라 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이곳의 지형이 거북이가 잠을 자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잘숙(宿)자와 거북구(龜)자를 써서 '숙구지(宿龜地)'라 불렀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마음은 부유하였고 깊은 계곡에 살았지만 마음은 항상 평화로웠다. 도시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생활보다 도인처럼 평화롭게 다감한 생활을 하여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고려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한탄하며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여생을 보내려고 찾아온 사람이 이백년(李百年)과 이억년(李億年)이었다. 그들은 천리길을 걸어서 지리산으로 와 화촌에 와서 일시 머물다가 이곳으로 들어와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고 글을 읽으며 지내다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문하마을 동쪽 산기슭에는 이억년의 분묘가 남아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강직한 충절의 교훈을 심어주고 있으며 문상마을 위에는 집을 짓고 살았던 억년터와 그가 휴식한 억년대가 있고 이백년이 살았던 백년동이 있으며 도정마을 뒤에는 그들이 강학하던 도정정사(道正精舍) 터가 있으며 그 뒤 마을이 형성되어 마을 이름을 도정이라 하여 두 사람이 이곳에 은거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그 뒤부터 이곳을 '성촌'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여창(鄭汝昌)과 김일손(金馹孫)이 지리산 등산길에 이곳을 지나가다가 지형을 두루 살펴보면서 후생들이 가히 살만한 곳이라 하여 '가거동'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광해군 십년에 지지재 강대량이 이곳을 지나다가 훌륭한 문인이 날 곳이라 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문동'으로 불렀고 정여창의 시호를 따서 '문헌동'이라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왜인들이 들어온 후 '문정동'으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는 훌륭한 인물이 이 고장에서 태어날 것이라 믿으며 아름답고 조용한 이곳에서 신선처럼 살아가며 희로애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도시에서 고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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