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곡면> 개평리> 여창의 효심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여창의 아버지 육을(六乙)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싸우다가 순직하고 말았다. 이때 여창은 나이 십팔 세였는데 함경도까지 달려가 한달간이나 찾아다니며 부친의 시신을 찾아 고향으로 운구해왔으니 그 효심을 알 만하다. 조정에서는 육을의 무공을 높이 평가하여 그 아들 여창에게 그 명예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여창은 아버지의 공을 자식이 차지할 수 없다하여 극구 사양하였던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인하여 하루는 술에 취해서 들에서 자고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애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들어선 안 된다 하여 꾸짖고 바르게 살도록 훈계하였다. 그는 어머니께 다음부터는 절대로 입에 술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일생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임금이 내리는 술잔도 자신의 사정을 아뢰어 받지 않고 거절한 사실이 있다.
고을원이 지극한 효자로서 모범이기에 조정에 효자상을 상신하려 하였으나 여창은 관가에 찾아가서 자신은 부모님께 할 도리를 다한 것뿐이지 효자가 아니라고 울면서 극구 사양하여 효자상 상신을 못하게 하였다. 어머니가 전염병에 걸렸을 때도 한 방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어머니가 죽을 먹으면 저도 죽을 먹고 어머니가 굶으면 저도 굶는 등 금기된 생활을 서슴없이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그도 전염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 하였으나 그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으니 마을 사람들은 전염병도 효자에게는 못 당한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승안산에 안장하려하자 승안사 승려들이 극구 반대하여 강가에서 운구가 건너오지 못하도록 항의하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하여 강을 건널수 없게 되었다. 여창은 자신이 불효자라서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며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부르짖으니 강물이 갈라져서 강을 건너 운상할 수 있었다. 강 건너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승려들이 스스로 철수하였으며 그 이후로 승려들이 하나둘씩 떠났다고 전한다.
상중에도 그 효행이 가상하여 관아에서 묘소와 관과 비문을 마련해주고 장례를 치를 일꾼을 보내주도록 하였으나 백성에게 노고를 끼치면 그 원성이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하여 극구 사양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가솔들과 하인들로 하여금 장례를 치렀으며 삼년동안 여막에서 죽만 먹고 지냈으니 그 효성을 짐작할 만하다.
어머니께서 남긴 물건들을 하인들과 이웃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상속받은 전답 중 옥토는 아우들에게 나누어주고 박토는 자기가 차지하였으며 젊고 건강한 하인들은 아우들에게 나눠주고 늙고 병든 하인들은 자신이 차지했다고 전해진다. 여창은 효와 충, 의 등 윤리면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많았기 때문에 만인의 존경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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