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동면> 우명리> 효리의 칼바위
'우명리' 혹은 '효리'라고 하는 마을 이름은 소가 우는 형국이라고 하고 혹은 효자가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소가 누워서 반추하는 형국이라 한다. 남대문 밖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했는데 함양에서도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많기로 개평 다음가는 마을이며 조선 초기 천석을 하는 집이 30호나 되고 김해평야나 호남평야에 많은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다.
이 마을이 잘 사는 것은 소와 연관된 형국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농경 사회에서 소는 소중한 존재이며 소는 풍만과 평화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마을 뒤에는 소뿔처럼 생긴 바위가 두 개 있었고, 마을 가운데에는 우물이 세 개 있었는데 소의 여물통과 젖이 나오고 오줌이 나오는 곳을 상징하였으며, 마을 앞에 소구유처럼 연못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건너편 논에 칼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서 있었다.
마을이 점점 약화되어 간 데는 이 마을에 사는 유생들이 승려를 구박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시대사조에 따라 이 마을에서 불교가 푸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마을에 탁발승이 동냥을 갔다가 번번이 푸대접을 받고 돌아간 것은 당연지사라 할 것이다. 그러자 한 수도승이 찾아와서 부잣집에 묵게 되었는데 그는 지형을 살펴보니 앞으로 무궁무진 뻗어 나갈 수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승려가 집 주인에게 이 마을은 잘 사는 마을이지만 잘만하면 이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넌지시 말을 했다. 욕심 많은 주인은 승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 앞에 서 있는 칼바위를 없애고 뒤에 있는 바위 하나를 뽑아서 마을 앞 연못을 메우면 좋을 것이라 하고 떠나 버렸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호기심이 점점 강해지고 욕망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시키는 대로 마을 뒤 바위를 뽑고 못을 메웠다. 그리고 칼바위를 깨뜨릴 때 학이 세 마리 나와서 동서남 세 방향으로 날아가 버리고 바위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와 지금도 깨진 그 바위는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 때부터 이 마을은 마루 밑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호남평야 김해평야에 있던 곡식 창고도 불이 나서 다 타 버리고 재물도 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지맥을 완전히 끊어버린 결과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의 앞에 있는 칼바위는 소가 그것을 볼 때마다 용을 써서 기를 살리는 역할을 하였는데 정기를 제거한 것이고, 뒤의 뿔을 자른 것은 소의 기력을 잃게 하였으며, 앞의 못은 소의 여물통인데 먹을 것이 없어졌으니 소의 운명이 다한 것이다.
이 마을은 구천서원이 있는데 여기에 모신 분들은 모두 이 마을 출신으로 효자들이요 충신들이기에 이러한 전설은 당연한 것이다. 효리가 부촌이라고 하는 말이나 선비 마을이라고 하는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이 마을 출신들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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