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동면> 우명리> 청탁(請託)의 역효
이 이야기는 설화가 아니라 실화이다. 조선 선조 때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와 동문수학한 옥계(玉溪) 노진(盧禛),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 등과 더불어 시가와 문장이 뛰어나고 청렴결백한 인물이었다. 그는 시와 문장으로 호남지방을 주름잡아 호남 오현 중의 한 사람으로 공론(公論)을 유지하고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척이라도 자주 와서 문안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왕조실록에 보면 하루는 집안 사람이 와서 문안을 하고 취직자리를 구하는 뜻을 보이자 청련의 얼굴빛이 변하면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이는데 그것은 관직에 등용시키기 위해 물색해 놓은 사람들의 명단이었고 여러 사람 가운데 그 족인(族人)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었다.
청련이 말하기를 "내가 여기에 기록한 것은 장차 관직에 뽑아 쓰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자네가 벼슬을 구하는 말을 하고 있으니 만약 청탁을 해서 얻는다면 공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애석하고 안타깝구나. 자네가 스스로 발설하고 말았네." 하자 그 사람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돌아갔다.
청련은 사람을 등용시킬 때마다 엄격하게 선정하였고 매사 공명정대하고 청렴결백하였기 때문에 임금님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은 공인으로서의 처세와 충성심이 비교할 자가 없다고 감복하였으며 사후에 광국공신과 연안군에 추봉되고 청백리안에 녹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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