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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수동면> 우명리> 청백리 양관(梁灌)

  조선 초기 효리에서 태어난 양관은 덕천군수로 임관되어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행장을 꾸려보니 괴나리봇짐 하나 뿐이었다. 그는 '내 마음 맑은 하늘에 비추어 보아 추호도 본연에 가림이 없고자 했네. 돌아갈 행장을 차려 보니 도리어 부끄럽나니 삼베 이불도 역시 덕천 밭에서 나왔도다.' 하는 시를 짓고 괴나리봇짐을 메고 덕천 나루터에 도착했을 때였다. 

  초라한 모습의 선비 하나가 나루에서 같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선비가 문득 양관이 지고 있는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제가 평소에 가장 아끼는 것이라고 하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기에 아끼느냐며 보여 달라고 하여 짐을 풀어 보았다.

  그 짐 속에는 소학과 두보의 시집, 거문고와 학 그림 그리고 삼베 이불 하나가 들어 있었다. 3년간이나 한 고을의 원님으로 있다가 떠나는 짐으로는 너무 초라하였다. 선비는 다름 아닌 암행어사 이색이었다. 양관의 맑고 검소하다는 소문을 듣고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나루에서 기다렸다가 짐을 조사해 본 것이다. 암행어사는 크게 감동하고 양관의 선정과 청렴함과 치적을 임금에게 상소로 올렸다.

  이 상소를 보고 기뻐한 임금은 양관을 통정대부로 승진시키고 의주목사로 임명하였다. 임금의 명을 받은 선생은 의주에 부임하여 전과 다름없이 청렴결백하고 공평정대한 치정과 업적을 쌓았다.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목사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때 이천영이 암행어사로 내려와서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적고 선생의 청렴함을 칭송하여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임금은 크게 기뻐하며 양관을 가선대부로 승격시키고 그 이름을 청백리 안에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양관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나루에서 배를 타고 있는 그림을 도화서에 명하여 화공으로 하여금 그 행색을 그리게 하고 임금이 손수 글을 써서 어전 벽에 붙이고 교지를 받고 임지로 떠날 때 임금에게 부임 인사차 오는 관리들에게 그 그림을 가리키며 청백리 양관의 모습이니 마땅히 본받아 잘 다스리도록 하라고 타일렀다 한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벼슬길에 나섰던 양관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사직하였다. 임금이 극구 만류했지만 그의 뜻을 굽힐 수 없었다. 성종임금은 자기가 쓰시던 벼루를 하사하시고 아쉬움을 나누었다. 그 벼루는 지금껏 그의 종가에서 보존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양관은 '삼괴정'이란 정자를 짓고 자신이 거처하는 방을 '일로당'이라 하여 아호로 삼았으며 후손 교육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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