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서상면> 금당리> 김진사와 맹서방
옛날 남원에 김진사가 삼백 석을 하고 살았다. 아들 셋 딸 하나 사남매를 두었는데 아들 셋은 별 볼일 없는 놈들이어서 장남은 매일 술집에서 여자만 좋아하고 둘째 놈은 기박(장기와 바둑)에 빠쳐 세상을 모르고 셋째는 무능한 놈팽이었다. 딸이 출가를 하게 되었는데 사위가 백운산 아래에 사는 맹가로서 맹랑하게 생겨서 처남 셋이 있지만 별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아내에게 "처갓집 재산을 좀 넘보고 싶은데." 하니까 "당신 수단 좋으면 얼마든지 뜯어먹어라." 하였다. 김진사가 자식들 때문에 천불이 나서 매일 말을 타고 하인이 몰고 놀러 나다니는데 감기가 들어서 며칠 동안 말을 타고 나가지 않았다. 그 때에 맹서방이 제 장인 말을 몰래 몰고 가서 흰말인데 검은 물을 들여서 마구간에 매어 놓았다.
말을 도둑맞았다고 집안에 소동이 벌어지고 하인들을 호령하여 내쫓아 사방에 말을 찾아 나섰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하인들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맹서방이 사는 골짜기까지 왔는데 점심때가 되어서 배가 출출하고 고프니 샌님 집에 들어가서 점심이라도 얻어먹고 가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마구간에 검은 말이 매여 있는데 저들을 보고 앞발을 두드리면서 머리를 굽신거리며 반가워하고 있었다.
"진사어른이 말을 도둑맞아서 난리가 났는데 말을 찾으러 다닙니다." 하니까 맹서방은 "야 이놈들아! 말 잘 지키지 어쩌다가 잃어먹었느냐?" 는 소리만 하였다. "샌님 말은 참 좋네요." 하니까 "좋지, 우리 말이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말이다." 하였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주인은 말 못 찾아온다고 하인들만 볶아댄다.
하인이 한다는 소리가 "아무리 찾아다녀도 없었습니다. 백운산 아래 샌님 집에 가니까 검은 말이 있는데 참 좋더이다." 하였다. "좋아? 얼마나 좋더냐? 한없이 좋아?" "예,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합디다." "그래 그러면 내가 백 냥 줄 테니 팔라 해라." 하여 이 하인 놈이 맹생원에게 갔다. "너 어찌 또 왔노?" 하니까 "진사어른이 백 냥을 줄 테니 저 말을 팔라고 합디다." "이놈이 뭐라하노. 백석지기를 준다 해도 안 팔고 있는데 백냥이 뭐냐?" 하였다.
할 수 없이 돌아와서 "재산 백 석을 준다 해도 안 팔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당하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내가 재산 백석지기를 줄 테니 팔라 해라." 하였다. 이놈이 다시 맹생원에게 가서 전하자 "내가 백석지기 받고는 안 팔라고 했는데 빙장어른이 그러는데 안 팔 수 있느냐."며 문서를 써오라 하였다.
이리하여 백석지기를 주고 말을 사왔는데 좋아서 타고 하루 종일 다녔더니 땀이 나고 해서 흰옷이 시커멓게 물이 들어 호랑이 가죽 모양으로 얼룩덜룩 하였다. 그래서 말을 씻겨놓으니 검은 말이 하얀 백마가 되었다. 화가 나서 "이놈을 잡아다 족쳐야겠다." 하고 장남에게 "네가 가서 맹서방 멱살을 끌고 와라." 하였다
엿듣고 있던 장모가 사위가 크게 당할 것 같아 사람을 보내 미리 알려 주었다. 맹서방은 큰 처남이 주색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장수골 길초 술집의 예쁜 기생을 불러 놓고 음식을 장만하여 "큰 처남이 오면 독주를 먹여 만취가 되어 떨어져 자거든 옷을 벗기고 저 궤짝에 가두어 자물쇠로 잠가라. 그 뒤는 내가 처리하겠다." 하고 돈을 두둑히 주었다.
아침에 깨어 보니 궤짝 안에 갇혀 있었다. 소리를 지르니 기생이 "조용히 해라 우리 서방이 와 있다." 하고 나무랐다. 하인들을 불러 그 궤짝을 처가로 보내 귀신이 붙었으니 장인이 톱으로 잘라 달라고 하였다. 톱으로 자르자 비명소리가 나는데 자물쇠를 부수고 꺼내 보니 홀랑 벗은 자기 아들이었다. 아들을 보고 "저놈 미쳤구나." 하면서 꾸짖었다.
둘째 놈을 보냈다. 장모가 엿듣고 다시 사람을 사위에게 보냈다. 맹서방은 고개 위에 바둑 선수와 장기 선수를 사서 신선처럼 꾸미고 장기와 바둑을 두게 하였다. 고개를 넘어오다가 보니 장기를 두고 바둑을 두고 있어 그것을 안 보고 갈 수 없어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한 판을 끝내고 "한 판 끝냈으니 우리 한 잔하고 두세." 하면서 술판을 벌였다. "젊은이! 오래 살고 싶거든 이 신선주 한잔 하지?" 하니까 술을 못 먹지만 신선주라 하니까 한잔 하고 싶어 술을 마셨다.
신선들이 다시 판을 벌이는데 옆에서 구경하다 술에 취해 떨어져 잠들었다. 그들은 혼자 자게 놔두고 다 가버렸다. 깨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신선이 바둑 한판 끝나면 일 년이 훌쩍 지나간다는데 몇 년이 지나갔는지 우리 아버지도 벌써 세상을 떠났겠다 생각하고 우리 아들도 많이 컸겠다 생각하며 돌아오니 날이 샜다. 아버지를 보고 "나 아버지 세상 버린 줄 알았어요." 하니 "미친 놈 또 나왔다. 저놈도 미쳤구나!" 하였다.
셋째를 보고 "이제 너 뿐이다. 네가 가서 맹서방 놈 머리채를 끌고 오너라." 하였다. 장모가 또 사위에게 기별을 보냈다. 맹서방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는 것을 보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물 한 그릇 갖다놓고 장인 부고지를 써 놓고 부부가 울며 처남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관계치 않았다. 셋째가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아침밥 먹고 빙장어른이 세상을 떠나셨다네." 하니 "어! 부고가 나보다 앞에 왔네. 아이고, 아버지!" 하며 울고 돌아오는 것을 아버지가 보고 "저 자식도 미친 놈이다." 하면서 "이 자식들아! 너희 세 놈 뭉쳐 놓아도 맹서방 그놈 못 당하겠다. 그놈 백 석이 아니라 삼백 석을 먹고도 남을 놈이다." 하면서 용서하고 말았다는 설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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