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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곡면> 마산리> 유자광의 고모 댁

  유자광이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서 함양의 수여마을에 있는 고모님에게 인사차 방문하였다. 이 마을에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지어 날로 번창하고 세도가 당당한 집안이 있었는데 유자광의 고모 댁이다. 유자광은 얼자출신이라 적서의 구별이 엄격한 당시는 아무리 관찰사라도 고모 앞에서는 법도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대문을 들어선 유자광은 방안에 있는 고모에게 마루에 올라가서 인사를 드릴까요? 마당에서 인사를 드릴까요? 하고 아뢰니 고모는 돗자리를 마당에 던지며 마당에서 인사를 올려라 하였다. 당시는 서자는 방안에 들어가서 인사를 못하고 하인처럼 마당에서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자광은 얼자로서 가슴에 한이 맺혀있는데 벼슬을 했지만 그날도 이렇게 설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지만 법도가 그러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 맺힌 가슴에 서운하고 분한 마음이 솟구치지만 태연히 마당에서 인사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복수의 칼을 갈고 묘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올라가 대화를 나누다가 말을 꺼냈다. 

  날로 고모님 댁이 번창하고 이름이 사방에 떨치며 많은 인재가 계속 나오는 것은 하늘의 뜻이요 이곳의 지세가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운도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몇군데 손을 쓰면 영원히 세도가 번창하고 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째야 된단 말인가 하고 물었다.

  그는 제가 보기에는 산이 틈도 없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으니 앞뒤가 다 막혀 뻗어나갈 장래를 기약하기 어렵고 운세가 한정되어 있는데 대문밖 들에 있는 바위도  요사르러운 것이기 때문에 요사스런 바위를 깨뜨리고 성황당 고개와 상곡을 통하는 고개를 훤히 트이게 하면 만대에 영화를 누리고 마을이 크게 번창할 것입니다 하고 그럴듯하게 둘러대고 그는 돌아갔다.

  그 말을 들은 유자광의 고모는 몇 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찜찜하다. 듣지 않아야 할 말을 들은 것이다. 대문밖 들에 서있는 바위가 요사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두 고개가 막혀있으니 답답해 보여서 확 틔우면 시원스럽고 좋을 것도 같았다. 유자광의 못된 마음을 알 리가 없는 그의 고모는 손을 보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고 하인들을 시켜서 대문밖 들에 있는 바위를 깨뜨리기 시작하였다. 바위를 깨니 뜻하지 않게 바위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지라 놀라서 엉겁결에 흙을 덮어 흐르는 피를 막았다. 성황당 고개를 끊고 북으로 통하게 하니 난데없는 학이 날아 나와 멀리 북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세 번째로 상곡고개를 끊으니 하얀 서릿김이 하늘 높이 솟았다고 한다.

  그 후로는 가운이 날로 쇠퇴하여 드디어 가정이 완전히 망해버리고 마침내 마을마저 폐동이 되어 딴 곳으로 옮기고 말았다. 지금도 그 일대를 파면 기와조각이 나오고 피바위가 있던 아래 비루바위에는 비만 오면 바위 위에 핏물이 고인다고 하며 바위를 깨낸 자리에는 옛날의 바위형태를 만들어놓고 있다 한다.(마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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