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수동면> 화산리> 이진사와 구진정
사근의 수동중학교 뒤에는 구진정이란 우물이 근대에까지 있었는데 상수도 시설로 수돗물을 먹기 시작하면서 폐쇄되었다. 조선시대에 이진사라고 하는 서울 토박이 선비 한 분이 있었는데 세상이 하도 어지러워 자신은 관리생활을 하지 않았는데도 정치판의 권력투쟁에 휩쓸려 역적으로 몰려서 이곳 사근역에서 오리정도 떨어진 까막섬(烏島)으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이진사의 성품은 활발하고 호방하며 사교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누구나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귀양지에서 오래 있다 보니 답답하고 술 생각이 나서 밤이면 몰래 역말인 사근으로 와서 술을 마시고 가곤 하였다. 사람이 좋기 때문에 혹 안다 하더라도 이탈한 사실을 밀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술을 마시면 죄 없이 귀양을 오게 된 일이나 고향 생각에 홀로 외롭게 지내는 갖가지 일들의 회포를 억제할 길이 없었다. 그는 사근에 자주 와 술을 마시고 회포를 풀던 중 주변의 다른 술집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곳은 미색을 갖춘 젊은 과부가 꾸려 가는 술집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일반 주막집 주모와는 달리 근본 있는 집안에서 자란 여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진사는 이곳으로 술집을 옮겨 자주 드나들며 술을 마시게 되었고 서로 가까워져서 마침내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되었다. 결국 주모와 인연을 맺어 자식까지 얻게 되었다. 어느 결에 세월이 흘러 그들은 자식을 네 명이나 얻게 되었다. 귀양살이를 하는 영오의 몸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는 사면이 되었고 귀양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귀양살이를 오기 전에 서울에는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서울의 아내는 죽고 다섯 명의 자녀만 남아 있었다. 그는 서울의 자식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이곳을 두 번째 고향으로 삼았다.
그는 모두 아홉 명의 자식을 두었으므로 복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고 정실부인이 죽었으니 이곳 주모를 정실로 맞이하여 자녀를 정성껏 길렀다. 주모가 막걸리 장사를 하여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힘을 써서 자녀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하나하나 진사시험에 합격을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가정에는 화기가 넘치고 아홉 명의 자녀들은 우애가 돈독하여 복된 삶을 누렸다.
서울은 서울대로의 문화생활과 편리한 점이 있지만 이곳 시골은 시골대로 복잡한 세상과 동떨어져 있어 근심걱정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이다. 오랜 귀양생활로 시골생활도 익숙해져서 별로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자녀들 교육에 재미를 붙이고 만족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사근에 있는 우물물로 막걸리를 만들어 팔아서 자녀를 공부시키고 이 우물물을 먹고 공부하여 아홉 형제가 모두 진사시에 합격했다고 해서 이 우물을 구진정이라 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우물물을 먹고 아들을 많이 낳았다고 해서 구진정이라 하고 또 우물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져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이 우물물을 퍼다 마시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진사에게서 우리는 대인관계가 원만하면 누구에게나 적이 없으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자신이 잘나고 똑똑한 체 하는 사람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스스럼없이 원만하게 사는 것이 사회에도 유익하고 자신에게도 복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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