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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안의면> 상원리> 은신암과 무학대사

  용추계곡에 은신암(隱身庵)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6.25때 소실되었다. 이태조의 총애를 받던 무학대사가 서울 도성 터를 잡은 후 이곳으로 내려와 은신암을 창건한 설화가 있다.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하여 도읍을 옮기려고 후보지를 물색하였다. 무학과 정도전은 대립되어 계룡산과 왕십리를 고집하는 무학대사를 누르고 한양도성의 위치를 잡게 되었다. 무학은 궁궐을 짓다 사고가 나서 허물어지고 또 자기의 계획이 탄로 날까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몸을 피할 목적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나 어느 산중의 깊은 골짜기에 이르렀다. 산비탈에서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노인이 이랴 이놈의 소야 무학보다 못한 놈이라고 소를 꾸짖으며 소를 때리는 노인을 보았다. 무학대사는 그 노인에게 여보시오 노인장 어찌하여 무학이를 소에다 비교하오? 하고 물었다. 그 노인은 대답하기를 서울 궁궐터가 학의 설이라 학을 날지 못하게 네 곳을 눌러놓고 궁궐을 지어야 할 것이요. 그것도 모르고 집을 지으니 학이 날개를 치면 지어놓은 궁궐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오. 이른 이치를 모르니 무학이가 소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오. 하고는 간곳이 없어졌다. 

  이 말을 들은 무학은 너무나 기뻐서 그길로 서울로 올라갔다. 노인의 말대로 네 곳에 사대문을 먼저 세워서 학의 날개를 눌러놓고 궁궐을 지었더니 과연 노인의 말대로 훌륭한 궁궐이 지어졌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항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정도전도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 언제 무학을 제거하기 위하여 무학이 품었던 욕심을 떠벌릴지 모른다. 

  즉 지금의 궁궐터에 큰 절을 지으려고 도읍터를 계룡산으로 잡았다가 정도전에게 발각되어 중지하고 왕십리에서 시작하다가 다시 발각되어 중지한 일들을 언제 폭로할지 모른다. 왕에게 아뢰는 날이면 무학의 목이 열개라도 다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심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항상 불안하여 그 길로 몸을 피하기 위하여 각처를 헤매다가 이곳 안의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학은 경치가 아름다운 심진동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보니 우편 절벽에 매바위가 보인다. 매바위는 산 중턱에 튀어나온 자연석의 큰 바위 형상이 날개를 오므리고 부리를 아래로 하고 쉬고 있는 매의 형상그대로다. 누구의 설명도 필요 없이 아무라도 이 길을 올라가면 이 바위가 눈에 띄고 보면 금방 매바위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어있다. 

  무학은 매바위가 있으니 틀림없이 꿩설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주변의 지형을 찾아다니다가 보니 과연 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지형이 있어 그 지형을 찾아서 거기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숨어 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상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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