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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병곡면> 원산리> 팥죽배미

  오래전 원산마을에 박씨라는 사람이 이사를 와서 전답을 사들이고 곡식이나 돈놀이를 하여 치부해 갔다. 강자에게는 아부하고 약자에게는 갖은 행패를 다 부렸다. 비굴하면서도 교활하였다. 어느 해 날씨가 가물고 흉년이 들었다. 그러다가 또 큰 수해가 나서 전답이 떠내려가기도 하였다. 옥토는 부자들이 다 가졌고 가난한 사람은 산비탈이나 냇가를 개간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기 때문에 한해(旱害)나 수해, 또는 냉해는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이 마을에 강씨라는 사람이 연이은 흉년에 부모와 자식들로 권속은 많은데 먹을 것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박씨에게 가서 곡식을 빌려 달라 사정하였다. 박씨는 종이 한 장을 주며 수결을 하라는 것이다. 가족들이 굶고 앉았으니 어쩔 수 없이 수결을 하고 곡식을 달라 하였다. 그러나 박씨는 내일 오라고 한다. 가족들이 굶주려 한시가 급한데 내일 오라지만 곡식을 빌리기 위해서는 항의도 독촉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

  그 다음날 강씨는 박씨네 집에 곡식을 가지러 갔다. 그런데 박씨는 곡식은 주지 않고 "굶주렸으니 급하지 않은가? 이 팥죽을 가져가서 빨리 나누어 먹게." 하였다. 강씨는 팥죽동이를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굶주려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우선 가족을 살려놓고 보자하고 생각하며 팥죽을 가져다 박씨에게서 빌려왔노라 하고 가족들이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그 이듬해 봄에 박씨 머슴이 강씨네 논에 와서 논을 갈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박씨네 머슴은 주인이 팥죽 한 동이를 주고 바꾸었으니 가서 농사를 지으라 하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논을 빼앗긴지 수년이 지나갔다. 

  어느 봄날 풍문에 이 고장의 사또가 민정을 시찰하기 위해서 이 마을을 행차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아 온 마을이 어수선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사또가 이 마을을 지나서 잣들로 행차하신다는 말이 들렸다. 이 길은 경사가 급하고 험하지만 읍에서 잣들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얼마 있으니 사또의 행렬이 마을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이 마을을 지나 길가에 정자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밑에서 원님의 행차가 쉬고 있었다. 

  그때 부인 한 사람이 달려와 사또 앞에 꿇어앉아 "아녀자로서 당돌하오나 골수에 맺힌 한이 있어 여쭈옵니다." 하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불상사가 있을까 하여 나졸들이 여인을 밀어내어 돌려보내려 하였다. 그 여인은 발길을 돌려 통곡을 하며 우는데 사또의 귀에까지 들리고 말았다. 사또가 그냥 지날 리가 없다. "웬 아낙네의 울음소리냐? 실상을 아뢰어라." 하자 나졸들이 사또에게 자세히 고하는 말을 듣고 직접 부인을 불러서 사연을 들었다. 

  이때 그 부인은 정색을 하고 팥죽 한 동이에 전답을 빼앗긴 사연을 이야기 하였다. 부인의 말솜씨와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여 동행하던 관원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들은 사또는 부인의 말에 감동하여 즉석에서 박씨를 불러 판결을 하였다. "이 악한 놈의 여죄를 낱낱이 들어내어 곤장을 쳐서 벌을 내리고 이 마을 사람들의 재물을 모두 되돌려주게 하라." 하였다.

  그 이후로 이 논을 '팥죽배미'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마을 이름을 원님이 지나갔다 하여 '원통'이라 하였으며 그 박씨는 벌을 받고 멀리 쫓겨나고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지금은 팥죽배미가 원산댐을 만드는 데 수몰되어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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