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병곡면> 송평리> 이지활의 사당
고은(孤隱) 이지활(李智活)은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8세에 운봉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어린 나이지만 지혜롭게 고을을 잘 다스렸다. 세조가 자신의 어린 조카인 단종을 왕위에서 폐위시키고 왕권을 탈취하였다. 고은은 불과 스물두 살의 나이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지키고자 관직을 그만두고 속세를 떠나 은둔생할을 하였다. 그는 백전에 은거하여 살다가 거창 박유산으로 들어가 북망정을 짓고 일편단심 단종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고 나서 후손들이 백전에 사당을 세웠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적들은 이 골짜기에까지 들어와서 행패를 부렸다. 고은의 후손들은 왜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하여 남자들은 재빨리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아녀자들은 미처 달아날 겨를이 없어서 사당에 들어가 문을 굳게 잠그고 숨어 있었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안에서 인기척이 있었으나 문을 열어도 열리지 않고 나오라 해도 나오지 않자 왜군들은 사당에 불을 질렀다.
그러자 사당의 처마 끝에서 물이 흘러내려서 비 오듯 쏟아져 불이 꺼지고 말았다. 그러자 왜군은 다시 마른 나무더미를 가져다 놓고 불을 질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이번에는 새빨간 피가 흘러내려서 불이 꺼지고 말았다. 왜군은 놀랍고 괴이한 일이기에 한편으로는 두렵고 불길한 일이라 생각되어 대오를 정리하여 사당 앞에 줄을 지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용서를 빌고 도주해버렸다 한다.
사당 안에 있던 후손들은 무사히 생명을 보존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후로부터 이 고장에는 충신의 혼령이 왜군을 꾸짖고 자기 후손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다고 하는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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