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백전면> 오천리> 도둑놈골

  내천마을 북쪽으로 올라가면 '도둑놈골'이라는 분지가 있는데 공인된 지명은 아니지만 옛날 의적들이 둔치고 살았던 곳이라 그렇게 불리어지고 있다. 옛날 이곳에 십여 명의 의적들이 벼슬아치나 양반들 그리고 부자들의 등살에 못 이겨 이곳에 모여들어 뜻을 합해서 칼과 죽창을 들고 다녔지만 살육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신들의 호신용이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의 재물을 빼앗는 좀도둑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 관아나 양반들 부자들의 재물을 약탈하여 자기들이 먹는 것 외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적이었다. 그러기에 가난한 토속민들은 그들을 밀고하지도 않고 오히려 도와주고 보호하였다. 

  그 의적 떼의 두목은 용이라는 청년이었다. 그의 가정은 수해로 전답을 잃고 가난으로 먹을 것이 없어 양반집 쌀을 다음해 네 배로 갚기로 하고 빌려다 먹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도 가뭄이 들어 그 양곡을 갚지 못하고 다음해 갚지 못하면 누이와 용은 그 집 하인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겨우 사정하여 미루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해에도 흉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용은 누이와 양반집 하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노모마저 자살하여 죽고 말았다. 

  부자의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누이동생을 노리개감으로 하여 임신을 시켰다. 용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누이를 껴안고 통곡하였다. 네놈을 그냥두지 않으리라. 꼭 원수를 갚으리라 결심하였다. 복수를 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누이를 없애기로 하였다. 그는 그날 밤 그 집을 뛰쳐나와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속에서 나무열매와 사냥을 해서 먹고 살며 무술을 연마하였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젊은이들을 수십 명이나 모았다. 무술을 가르치고 훈련하여 천민을 괴롭히는 양반들, 호족들 집을 습격하여 재산을 빼앗아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용의 마음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누이를 농락하고 부모와 누이를 죽게 한 그 부자 노랭이를 그대로 둘 수 없어 부하들에게 자신의 내력을 설명하자 의적들은 눈물을 흘리며 당장 쳐들어가 그를 처치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의적들이 휩쓸고 다녔기 때문에 관청이나 부잣집은 경비를 더욱 철저히 하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었다. 용은 그 집의 하인들과 뜻을 맞추어 안채에 불을 질러 그 가족들을 화장하자고 하였다. 곡식은 하인들이나 누구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두자고 하였다. 

  그 의적들은 충분히 논의하여 묘책을 짠 후 그 부자 놈에 대해 철저한 응징을 하였다. 결국 그 부자 일가는 꼼짝도 못하고 방안에서 불에 타죽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관에서는 의적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었다. 저자거리에는 의적들의 초상화가 걸리고 방을 써 붙이는 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들은 비웃었다. 그 초상화들은 누군가에 의해 수시로 변하였다. 수염이 그려지기도 하고 민둥머리에 두건이 쓰여지기도 하여 종잡을 수 없었다. 주민들이 의적들을 보호하고 돕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포졸들은 의적을 한 명도 잡을 수 없었고 많은 재산을 가진 양반들은 자신의 재산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자들도 생겼다. 자기는 구두쇠가 아니라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이들 의적들은 백전의 내천마을 북쪽의 골짜기에 둔쳐 살았다하여 지금도 도둑놈골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호족들의 경각심을 깨우쳐주기 위해 생긴 설화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