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서상면> 금당리> 육십령
육십령이란 명칭유래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안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가 육십리이고 장수 감영에서도 이 고개까지가 육십리라 하여 육십령이라고 명명했다는 설이다. 둘째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 개의 고개를 넘어야 넘을 수 있다고 해서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셋째는 여러 가지 설화가 깃들어 있는 도둑이야기다. 옛날에는 이 고개에 산적들이 많아서 함부로 넘나들지 못하였거니와 사람들이 고개를 넘다가 산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재물을 빼앗기고 생명까지 잃어버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육십 명의 장정들을 모아서 함께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여 떼를 지어 넘어야 했던 고개라 하여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라고 하는 설이다.
지금도 추상마을 뒤 골짜기로 올라가면 옛날의 주막집 터가 있고 걸어서 다니던 옛 길이 수풀 속에 묻혀있다. 가지가지의 이야기를 남긴 고개요 신라백제의 전쟁터이기도 한 이 고개는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리고 국도가 뚫리고 그러한 이야기는 설화로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뒤쪽 도천리에는 피적래(避賊來)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육십령 아래에 살던 사람들이 도적떼가 자주 침입하여 약탈을 해가기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도적을 피해서 이곳으로 옮겨 이사하여 마을을 형성했다 하여 피적래라 한다고 전해진다. 신안 주씨들이 일제의 압박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마을을 이루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 설은 불과 백여 년 밖에 안 되는 역사를 말하는 것이기에 이 마을의 연륜으로 보면 그 설은 신빙성이 없고 도적을 피해왔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금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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