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함양읍> 대덕리> 월척 잉어
함양에서 상림을 지나 숲이 끝나는 위의 고개를 '도덕고개'라 하고 그 아래 냇가에 있는 바위를 '도덕바위'라고 한다. 옛날부터 낚시터로 유명하며 뇌계(㵢溪)선생이 이곳에서 어느 날 낚시질를 하다가 일어난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봄날 뇌계선생이 도덕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월척의 큰 잉어가 낚시에 걸려 퍼덕이고 있었다. 2자 가량이나 되는 큰 고기였다.
이 근처에서 이렇게 큰 잉어를 보지 못했던 선생은 이렇게 크고 좋은 고기가 내 낚시에 걸린 것은 필시 뜻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 가져다가 봉양했으면 좋으련만 내가 감히 어찌 이 잉어를 욕심내어 사욕을 취하리오. 서울에 계신 임금님께 진상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 낚시에 걸리게 한 것이리라.
이튿날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잉어를 그릇에 담아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보름 만에 겨우 서울 남대문을 들어설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잉어는 입을 벌름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으니 그 정성이 어떠했으랴. 이미 저녁때가 되어 대궐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주막에 여장을 풀고 저녁에 서울 구경을 하노라니 감회가 깊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통행금지를 알리는 인경소리가 나자 소스라치게 정신을 차렸다. 부랴부랴 주막집을 찾아 헤맸으나 찾을 수 없었다.
"밤이 깊었는데 웬 사람이 이렇게 방황하고 있소." 하고 침착하고 점잖은 목소리로 묻는 사람이 있었다. 선생이 놀라 쳐다보니 남달리 키가 크고 품격이 있는 점잖은 선비 차림의 사나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예, 나는 경상도 함양 땅에 사는 유생원이라고 하는 선비올시다. 시골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내가 머물기로 하고 짐을 풀어놓은 주막집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중인데 댁은 뉘시오?"
"나는 이곳 북촌에 사는 이교리라고 하는 사람이오." 이렇게 인사를 시작한 후 서울까지 온 경위를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그 이교리라는 사람이 상감인 성종대왕임을 알 리가 없었다. 성종임금은 변복을 하고 백성들의 생활상을 살피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임금님은 선생의 지극한 충성심에 몇 번이나 감탄하면서 짐짓 시치미를 떼고 "그 주인집을 오늘밤에 찾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내 집이 누추하나 같이 하룻밤을 쉬는 게 어떠하오? 내일 내가 대궐로 안내해 드리리다." 하고 자기 집으로 가기를 권유하였다.
"초면에 예가 아닌 줄 알지마는 내 처지가 딱한지라 고맙게 따르겠소."
이리하여 선생은 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교리의 집이 너무 어마어마하게 크고 사람들의 언동이 이상했지만 밤인지라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 너무 넓고 색다른 가구가 진열되어 있는데 놀라면서 앉아 있는데 이윽고 술상이 나왔다. 술상을 본 선생은 또 한번 놀랐다. 음식을 담은 그릇은 모두가 은이요 술잔은 옥이며 놓인 음식은 선생이 본적도 없는 진귀한 것들이다. 선생의 놀라움은 차츰 분노로 변해갔다.
'아무리 벼슬아치라지만 일개 교리의 신분으로 이렇게 사치스런 생활을 한다는 말인가? 이는 분명히 부정으로 재물을 모았음에 틀림없어.' 이렇게 생각한 선생은 이교리가 권하는 옥잔을 뿌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여보 이교리, 내 이교리의 후의(厚意)가 고마워 참으려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소. 일개 교리가 이렇게 사치스런 생활을 한단 말이오. 어찌 신하로서 이렇게 무례하단 말이오.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임금님을 바로 모실 수 있겠으며 백성을 바로 다스리겠소. 나는 이 음식 먹지 못하겠으니 당장 물려 내 가시오." 이교리를 호되게 꾸짖은 선생은 문을 박차고 나가려 했다. 임금은 선생의 그 높은 충성심에 감동하여 이 사람이야말로 충직한 신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선생을 만류하여 간신히 앉게 하고 다른 상을 내오게 하여 술을 권했다. 선생은 지나치게 나무라는 것도 예가 아니라 생각하고 주인이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마시고 서로 잔을 주고받으며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허물없이 터놓고 서로 친구로 사귀기로 다짐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걸어온 피곤과 취기로 인해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상감마마라 하며 옷차림이나 말씨가 이상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선생은 창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깜짝 놀랐다. 넓은 뜰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큰 감투를 쓴 문무백관들이 조회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교리라던 그 친구가 왕관을 쓰고 옥좌에 높이 앉아 조회를 받고 있지 않은가. 두려움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서 있는데 조회를 마친 임금이 들어왔다. 선생은 임금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백배 사죄했다.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어지신 임금께서는 엎드린 선생의 손을 잡고 일으키면서 "금과 옥이 보배가 아니라 어진 신하가 보배야." 하고 은근히 말을 보냈다. 선생은 엎드려 송구스러운 중에서도 허겁지겁 마음을 가다듬고 임금님의 말씀에 대한 답을 했다. "해와 달이 밝은 것이 아니라 상감마마께옵서 밝사옵니다." 임금님은 이 명답에 좋은 신하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항상 가까이 하면서 군신의 의를 초월하여 붕우의 정의를 변치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금은 주연을 베풀어 친히 선생의 손을 잡고 술을 권하면서
"있으렴 부디 같이, 아니 가든 못할소냐?
무단히 네 싫더냐, 누구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애닯구나 가는 뜻을 일러라."
하는 노래를 불렀다. 석별의 정을 토로하면서 못내 섭섭해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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